1. 지나치게 비싼 물건, 그리고 그것을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먼저 국경시장에서 파는 물건의 가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좋은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그 물적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물건일지라도 그것과 관련해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사게 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어릴 때 갖고 놀던 ‘디지몬 어드벤처 다마고치’가 재출시 되었을 때 내가 3만원이나 주고 샀던 것처럼, 레고 등 ‘어덜트’시장이 꽤 탄탄한 행보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그리고 최근 스팀사(社)의 ‘컵 헤드’라는 30년대 애니메이션풍의 게임이 인기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추억을 떠올리는 것 보다 당장 친구와 노는 것이 즐거웠는데, 기억에 대한 감상이 이렇게 바뀐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소설 내에서 노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 15세가 안된 어린 소년들뿐이었던 것은 그것을 표현 한 것일 터이다. 어린아이들은 추억 하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지 않고, 때문에 기억에 대해 별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냥 어리기만 하던 그들 역시 어느 순간 열다섯이 될 것이고, 기억의 소중함을 아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2. 고통스러운 회상의 카타르시스
‘종이 가면’의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서 ‘좋은 기억의 가치’를 볼 수 있었다면, 걸인이 자신의 결함을 자랑하는 장면에서는 ‘나쁜 기억의 가치’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었다. 걸인의 결함은 자신의 다리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제재가 ‘기억’임을 고려할 때 이 결함 또한 기억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결함’이란 문제가 있는 기억, 다시 말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기억들인 것이다. 이것을 걸인이 자랑거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상처와 아픔은 그야말로 아프고 다시 기억하기 싫은 법이지만, 그 기억들을 통해 배우고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즉 ‘결함은 큰 자산이다’라는 걸인의 말처럼, ‘잊고 싶은 기억마저도 소중한 자산이다’라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이런 ‘나쁜 기억’도 소중하다고 말할까? 다른 사람들을 생각 해 보기 전에, 나는 어떨까 생각 해 봤다. 국경시장에 가게 된다면 팔아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을까. 의외로 떠오르는 기억이 몇 있었다. 아프고 힘든 기억. 내가 좋아했던 친구에 관한 기억,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기억이.
내가 널 좋아하는 마음이 너에게 배신으로 느껴졌다면, 없던 걸로 해 버리자.
“미안해, 내가 착각했던 것 같아. 너한테도 이야기했지만, 난 친한 친구가 많이 없었잖아.
그래서… 난 감정에 대해 착각한 거야. 왜, 사춘기니까. 나도 비슷한 거야. 그 때 일은 잊어줄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네가 좋았지만 너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좋아하면 안됐다. 내가 열심히 감추고 숨긴 덕에,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래, 그냥 이대로 있자. 이번에는 네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를 좋아하는 채로 곁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그 후로 동성애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몸서리를 쳐도, 그래도 나는 차라리 좋았다. 적어도 나를 싸늘히 외면하진 않았으니까. 마음은 아팠지만, 티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여전히 좋아했으니까.
변명일지도 모르나, 나는 이 이후로 누군가를 만나는데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내가 상대로부터 상처를 받을까봐, 또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줄 까봐 무서워서 관계를 형성하는데 진심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억을 팔아버린다면 나는 다시 용기 내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 해 볼 수 있을까. 항상 숨기만 했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을까.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항상 부러워했듯, 사랑을 떠올렸을 때 더 이상 슬픔이 나를 감싸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려움 없이 사랑을 줄 수 있으면, 숨김없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처럼, 평범하게.
“엄마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
“또 홍○○ 나오네. 징그러운데 왜 자꾸 나오나 몰라, 잘 한 것도 아니면서. 다른 거 보자.”
“징그럽다고 하지 마. 그리고 그들이 잘못한 것처럼 말하지 마. 그들은 그렇게 태어난 것뿐이잖아.
바꿀 수 없는 것 때문에 당신을 증오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잖아.
그게 자기 잘못도 아닌데. 흑인보고 당신 피부가 까매서 혐오스러워요, 라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야.”
“왜 그렇게 흥분하는데? 그래서 내가 ‘그 사람들’ 앞에선 이렇게 이야기 안하잖아.
가족끼린데 자유롭게 이야기 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아빠가 딸한테 좀 솔직하고 편하게 이야기 할 수도 있는 거지, 왜 이렇게 민감하게 굴어? 상처받게.”
내가 가진 또 하나의 기억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라고 말하던 가족들이 내 일부를 이루고 있는 요소에 대해 ‘징그럽다, 끔찍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아니, 요새도 가끔 듣는다. 엄마와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징그럽고 끔찍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 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대화가 어긋나는 것이겠지만, 그들을 이해하기에 앞서 큰 상처를 받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결국 이 기억은 나로 하여금 엄마와 아빠를 미워하게 만든다. 엄마 아빠덕분에 행복한 순간들마다 이 기억들이 불쑥 불쑥 끼어들어서는, ‘날 사랑하다고 말은 하지만 어차피 내가 누군지 안다면 날 떠나 버릴 사람들’일 뿐이라고 차갑게 비웃어대는 것이다. 기억이란 게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차라리 잊어버렸으면 싶기도 하다. 차라리 몰랐다면, 그리고 앞으로 있을 매 순간마다 그냥 차라리 잊어버렸으면. 그러면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엄마 아빠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런 기억들조차 평생 잊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하니 팔고 싶지 않았다. 아픈 기억이지만 떠올리고 나면 마치 슬픈 영화를 본 후에 드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있었고,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억들은 내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에게도 ‘나쁜 기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3. 망각을 부정할 자격
그것은 내가 고른 마지막 장면과 함께 이야기 하면 좋을 것 같다. ‘기억을 잃고 국경시장에 정착한 로나’는 ‘망각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을 만큼 아픈 기억이 많은 로나, 로나는 그것들을 전부 팔아버린다. 평소 ‘정착할 곳’을 찾는다면 떠돌이생활을 멈추고 그곳에 남을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로나는 국경시장을 그 곳으로 정했고 결국 영원히 국경시장에 갇히게 된다. 내가 ‘갇힌다’라고 표현 한 것은 화자의 로나에 대한 태도 때문인데, 기억을 잃은 로나에 대한 묘사를 읽어보면 ‘텅 빈 눈을 한 로나’, ‘로나는 더 이상 로나가 아니었다’ 등 매우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로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어떠한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때문에 기억을 모두 팔아버린 로나가 마냥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사실 가장 행복해진 채로 남은 것이 아닐까? 자신을 떠돌아다니게 만든 기억, 죽음의 벼랑에까지 내몬 기억들을 전부 없애버렸으니까.
신경숙의「외딴방」을 읽은 적이 있다. 엄마가 언젠가 들려줬던 엄마의 옛날이야기와 너무 비슷했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그 책을 사서 엄마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그러나 엄마는 몇 장 읽더니 책을 덮어버렸다. “옛날 일이 생각나서 도저히 못 읽겠다.” 책을 저만치 밀어놓으며,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에게 있어 10대 때의 기억은 비슷한 내용의 책조차 읽지 못할 만큼 큰 상처였다. 돈을 버느라 엄마의 꿈은 생각조차 못하고, 공장에서 일한 뒤 쉬지도 못하고 야간학교에서 공부해야 했으며, 그 때문에 우리를 낳고도 다른 대졸 학부모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야만 했던 기억. ‘국경시장’을 읽고 나서 엄마에게 “이제는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지 않아? 젊을 때로 돌아간다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었던 그 날, 엄마는 절대 아니라고, 할 수만 있다면 아예 없던 일로 해 버리고 싶은 기억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만학도로 대학교를 나오고 나서도, 엄마에게 그 때의 기억은 ‘역경을 이겨 낸 훈장’이 아닌 ‘지우고 싶은 흉터’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게는 ‘잊어버릴 만큼 나쁜 추억’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로 떠오를 때 마다 숨이 턱 막히게 만드는 ‘잊고 싶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조차 소중한 것이니 꾸역꾸역 감사하며 기억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 과연 있는 것일까. 과연 김성중은 로나를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릴 만큼, 아픈 기억을 갖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있는 걸까. 또 나는 로나 만큼이나, 우리 엄마만큼이나 아프고 힘든 기억을 가진 사람일까. 그러고도 결함조차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일까. 더 이상 ‘기억은 소중하다’는 명제에 대한 자신감은 없어지고 말았고, 내가 너무 오만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때로는 결함이 아무런 가치가 없을 때도 있다고. 오히려 독이 되어서 미래를 계획할 힘조차 빼앗아 가 버릴 때도 있다고. 그럴 때면 망각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누가 말했듯 신의 축복으로 긍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좋은 기억은 소중하다. 그러나 나쁜 기억의 ‘나쁜’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기억이 ‘나쁘지만 소중한,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고, 자존감을 뺏는 등 살아가는데 해가 되어 차라리 잊고 싶은 것일 수 있다.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나약하다’라고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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