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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과제

만들어진 관점과 그것이 부서져 버렸던 경험에 대하여

* 저는 나치의 사상과 홀로코스트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

 

어릴 때부터 준비를 해 놓아야 대학입시 때에도 써먹을 수 있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 버린 엄마 덕분에,

나는 한 때 독서논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주마다 책 한권을 읽어오게 하고 토론과 교재를 통해 책 내용에 대해 생각 해 보는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는 학원이었다.

 

하루는 이 학원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봤고,

논술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 주까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생각해오는 숙제를 내 주셨다.

 

내게 있어 꽤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였을까, 집에 돌아온 나는 마침 집에 있었던 오빠에게 신이 나서 영화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어떤 내용이었으며,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까지.

 

물론 오빠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였지만,

나치와 유대인이야기라면 오빠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냥 조잘조잘 내 이야기를 했다.

 

당시 우리 오빠는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유일한 존재인 양

내게 허세를 떨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가만히 듣던 오빠는 나치의 반인륜적인 행위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던 내게 잔뜩 으스대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만약 네가 그 당시에 독일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는 나쁜 게 아니었을 수도 있어.”

 

자존심 상하는 것은, 정작 우리 오빠는 그냥 허세에 가득 차 아무렇게나 던졌을 이 말을,

당시의 내가 되게 멋있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이 말에 적잖은 충격까지 받았다.

 

당시 나는, 언제나 그렇듯 모범답안을 내밀고 싶었다.

무슨 말이냐, 무고한 인간을 그렇게 학살한 행위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나는 나치에 반대했을 것이며 비밀조직에서라도 그들을 위해 싸웠을 것이다!”하고.

 

그러나 나는 영화 내내 등장했던, 이유 없이 유대인들을 증오하던 사람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나도 그 당시에 독일인 초등학생의 신분으로 그 시대를 살았더라면,

당대 정설에 근거해 사실만을 말하는학교 선생님들의 말을 진실로써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처럼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또 만일 그렇다면, 이때까지 내가 그렇게 배워왔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옳다고 생각해 온,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잘못되었다라는 이 관점은 어디에 근거해서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 역시 나중에는 잘못 된 생각으로 받아들여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나는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착한아이로 남고 싶다는 내 욕구에 이 반동적생각이 일종의 거스러미처럼 느껴진 때문일까,

다음 주 논술학원에 갈 시간이 돌아올 때 까지 양심의 가책과 혼란스러움이 나를 괴롭혔다.

 

월요일 조례시간, 매일 애국심에 가득 찬 채 나름대로 진지하게 임했던 묵념마저

갑자기 내겐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20년 후의 미래에 태어났더라도 내가 이걸 하고 있었을까,

미래의 나는 지금의 이 묵념을 국가가 행하는 일종의 강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아닐까,

 

뭐 이러한 생각들이 그날 그 대화 이후로 계속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오빠의 허세 섞인 그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인지.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고맙기까지 하다.

 

뒷이야기까지 조금 더 하자면, 이렇다.

영화감상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유는 모르지만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이 생각을 발표했다.

 

나치의 대량학살이 실은 '나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당연하게도, 논술선생님은 굉장히 격앙된 목소리로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말이 되냐고 나를 다그치셨다.

나는 거기서 또 바로 꼬리를 내렸고, 그날의 영화감상발표는 그냥 그렇게 끝났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나의 신념이라고 믿을 정도로 확고했던 나의 생각, 나의 사고방식, 내가 개별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실은 결코 탄탄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는 것이 유일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사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이었고,

심지어 내가 혼자서 터득했다고 생각한 보는 방향마저 실은 학교 교육에 의해,

혹은 부모님의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너무나도 당연하게 의자라고 불렀던 것들이

어느 순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나는 이 날 내가 의심할 여지없이 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가 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일까하는 회의가 들 정도로 텅 빈 생각일 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전제에 대해서 의심과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운 것이다.

 

내가 이 경험으로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 하나하나까지 의심 해 보는 것이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듣고 분노를 느끼는 것, 성매매 실태에 대해 듣고 분노를 느끼는 것,

조금 더 들어가 생명과 성에 대해 숭고한 기분을 느끼는 것 까지,

나도 모르게 불쑥 든 감정은 나의 학습과 여러 경험에 바탕을 둔 만들어진관점일 수 있다.

 

선생님들은 홀로코스트와 성매매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김없이 안타까워하거나 분노한 모습을 보여주셨으니

내게도 그러한 감정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 감정 속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게 되니 일정한 틀이 형성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바로 만들어진 관점’인 셈이다.

 

따라서 이를 깨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의심, 감정에 대한 의 제기가 필수적이다.

 

만들어진 감정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항상 내 감정의 이유를 생각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