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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약 아니고 외용약 2 #2 피부과는 횡단보도 옆 건물 4층에 있었다. 접수를 하고 앉아서 기다리자니 다른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쉴새없이 다리를 긁어대는 사람, 손등이 빨갛게 부어 오른 사람, 멀쩡해 보이는 사람(아마 점을 빼러 온 것 같았다), 핸드폰 보는 사람... 아무도 나처럼 몸에 풀이 돋아난 것 같지는 않아보였으므로, 나는 조금 우쭐해졌다. 다들 봐라, 난 특별히 희귀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 순간 다시 풀벌레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해서, 나는 기분 좋은 시선보다는 짜증섞인 눈초리에 가까운 그것들을 받으며 미안한 듯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곧 내 이름이 불리고, 나는 벌떡 일어나 진료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책상위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의사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어..
내복약 아니고 외용약 1 플롯 키워드 : 풀, 풀벌레, 제초제, 내복약, 외용약, 사망 #1 어느 날, 손에서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처음엔 털인줄 알았는데 너무 굵었다. 벌초할 때나 맡던 풋풋한 풀내음이 났고, 결정적으로, 초록색이었다. 털... 아니 풀은, 새끼 손가락 아래 부분, 그러니까 손가락이 손과 붙은 마디에서 시작해서 점점 번져나갔다. 손등까지 털... 아니 풀로 덮였을 땐 좀 웃기기만 했는데, 팔을 타고 올라가자 아무리 나라도 조금 심각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자꾸 어디서 풀벌레들이 나타나 내 털... 아니 풀 속으로 파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찌르르- 찌르르- 운치는 있었지만, 너무 시끄러웠다. 풀이 겨드랑이와 가슴까지 번져, 참다못한 옆집 아저씨가 소음에 대한 항의를 했을 때, (그때쯤엔 귀뚜라미가 내 어깨쪽에 ..
아이를 갖는다는 것, 그 책임감에 대하여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을 하나 읽은 적이 있다. 작성자는 자신의 누나가 ‘사이코패스’라고 밝히며 현재 가족이 모두 누나의 ‘교화’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뉴스스크랩 활동을 함께 하면서 각 사건마다 일반인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학습시키고(외우게 하고), “동물들이 불쌍하니 함부로 죽이지 마라”고 하는 대신 “사람들은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작은 생물들을 죽이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식으로 누나에게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누나는 어릴 때와 다르게 새를 죽인다든지 고양이를 학대하는 등의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며,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잘 해 내고 있다고 작성자는 말했다. 나는 이 이야기에 꽤 감명 받았다. ‘사이코패스’누나를 정신병자로 인식해서 감금하거나 입원시키는 ..
초현실주의와 해체주의의 상관성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는 시기상 해체주의보다 앞선 1924년, 앙드레 브루통의 으로 인해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고의 움직임을 표현하기만 하면 구두, 기술, 회화 등 어떤 방법이든지 기준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초현실주의는 생활 세계 내에서 일상화된 사물들이 지닌 힘들의 관념적 표현을 가능하게 했던 예술운동으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세계를 중요시하였으며 여러 실험을 통해 삶과 예술, 꿈과 깨어남, 자아와 언어의 경계를 도발하고자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꿈 이론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창작에 응용하였다. 그들은 해몽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욕구를 이해할 수 있다는 프로이트 학설이 인간 정신을 고정관념 및 일상성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
박민규, 카스테라 카스테라는 빵이다. 그럼, 그렇고말고. 끝.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는 강씨(氏)였는데, 어릴 때 혼자 거울을 보며 웃는 법을 수도 없이 연습했다고 했다. 웃는 게 이상하다는 소릴 듣고부터 자기의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고, 그 때 버릇 때문에 지금도 거울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고 그랬다. 그 애는 소위 말하는 ‘독한’ 애였다. 두 학기 동안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는데, 항상 나보다 늦게 방에 들어와서는 나보다 일찍 방을 나갔다. 어쩌다 너무너무 피곤한 날이면 나보고 꼭 깨워달라고 해서라도 제 시간에 나갔고, 시험 기간이든 아니든 커피와 박카스를 달고 살았다. 자습 중 조금이라도 잠이 온다 싶으면 복도에 나가서 신발장에 책을 올려놓고 공부를 했고 교내 대회라도 있는 날이면 온갖 상을 ..
‘소설의 언어’-번역된 소설풍으로 쓰는 레포트 노인과 바다 어쩌면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그녀는 홀로 중얼거렸다. 훌륭한 고전이라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 ‘노인과 바다’는, 그녀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 듯 했다. ‘자연과 인간사이의 갈등’. 이 이야기는 그녀에게 있어 그 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중학교를 다닐 때, 조금 더 지나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한국어 문제에서 ‘자연과 인간사이의 갈등’이 선지로 나올 때면 항상 이 소설이 언급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잠깐 추억에 젖었다. 그러고 보면 그 어떤 교사도 여기에 대해 이 짧은 이야기를 제외한 다른 작품을 예시로 드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그러한 형태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 정말 이 이야기뿐일지도 몰랐다. 소설이 재미가 없다는 것에 대해, 평소 같았다면 약간 유감스러운 것일 뿐에 그쳤을 거..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송이의 장미꽃 교육된 무능함 과거 미국의 ‘사교계’ 여성들은 오히려 더 수동적이었다. 그들은 교육받았는데, 이때의 교육이란 흔히들 생각하는 계몽적 교육 보다는 훈련에 가까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 가 보자. 그들은 글을 읽고, 사교에 익숙해지고, 문화를 접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읽는 글에는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공주가 나오기 일쑤였다는 것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또 한편으로 그녀들은 사교와 문화에 대해 배웠는데, 이들 대부분이 ‘조신해 지는 법’에 가까웠음도 잊지 말자. 예를 들면 아버지에게 대들지 않고 이야기 하는 법, 코르셋을 착용하는 법, 예쁘게 식사를 하는 법 같은 것들 말이다. 요컨대 그들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어떤 권위 아래에 속하는 법, 반항하지 않고 기다리는 ..
슬픔, 미친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짧은 감상 삶이 구질구질하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을 때는 ‘소외계층’이라는 말에 집중하면 됐다. 그러면 보통은 이야기의 가닥이 잡히고, 어찌어찌 쓰다보면 독후감 한 편 정도야 금방 완성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왜 이렇게 난감한지. 도움을 받고자 다른 사람의 감상을 참고하려 했다. 인터넷을 뒤지거나, 해설을 읽거나. 책 뒤에는 박혜경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었다. ‘죄’와 ‘사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내가 그렇게 읽지 않아서 그런지, 아쉽게도 ‘죄’에 대한 포커싱은 와 닿지 않았다. 과제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광대를 보는 것과는 다른 웃음 강의 계획표에 올라온 이번 수업의 부제는 ‘해학일까, 장난일까’이다. 글쎄, 적어도 내가 느끼기..